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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소셜 미디어의 힘

by jmin3 2020. 9. 18.

소셜 미디어의 정치적인 힘과 기술, 공공 영역, 정지적 변화를 알아야 한다. 2001년 1월 17일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력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필리핀 의회의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 대한 주요 증거를 채택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에 투표를 했다. 이 결정이 공표된 뒤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부패한 대통령이 탄핵을 모면할 소도 있다는 데 분노한 수천 명의 필리핀 시민이 마닐라의 주요 교차로인 에피파니오 드 로스 산토스 애비뉴로 몰려 들었다. 이 시위를 조직한 숨은 공신은 바로 소셜의 힘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EDSA로 모이자'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군중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며칠 만에 100만 명 이상이 집결해서 마닐라 시내 교통을 마비시켰다. 대규모 대응을 빠르게 조직화하는 이러한 대중의 능력(그 주에 700만 개에 가까운 문자 메시지가 발송이 되었다.)에 놀란 필리핀 의회는 절차를 되돌려 문제의 증거를 채택하기로 했다. 에스트라다의 운명이 결정이 되었다. 1월 20일 그는 해임이 되었다. 이 사건은 소셜 미디어가 국가 지도자를 몰아낸 최초의 사례로 기록이 되고 있으며, 에스트라다도 자신이 몰락 이유를 '문자 메시지 세대' 탓으로 돌렸다.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부상한 뒤 전 세계에서 네트워크화한 인구는 수백만에서 수십억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소셜 미디어는 일반 시민과 행동주의자, 정부, 비정부기구, 통신 업체와 소프트웨어 공급자 등 다양한 행위자를 포함하는 전 세계 시민사회에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환경이 미국 정부의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또 미국의 정책은 소셜 비디어에 어떻게 대응을 하고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밀도가 더 높고 복잡해지고 참여가 더 늘어나는 방식으로 통신구도가 바뀌면서 네트워크화한 인구는 더 많은 정보에 접근을 하거나 대중 연설에 참여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또 집단행동을 수행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 마닐라 시위에서 입증이 된 바와 같이, 정치 무대에서는 이렇게 늘어난 자유가 느슨하게 조직된 대중이 변활르 요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필리핀 전략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채택되었다. 2004년 스페인에서는 시위대가 궁극적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조직화된 시위가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총리를 퇴진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부당하게 비난한 바가 있었다. 2009년 몰도바에서는 공산당이 실각했다. 부정 선거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문자 메시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조직화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카톨릭 교회는 아동 강간범을 은닉한 협의로 여러 소송에 직면하고 있다. 이 과정은 2002년 미국 <보스턴 글로브>가 교회에서 일어난 성적 학대 사건을 폭로한 것이 몇 시간 만에 온라인에 퍼지게 되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2006년 3월 벨라루스의 경우처럼 행동주의자들이 실패하는 사례도 많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부정 개표 의혹에 항의해서 이메일을 통해 조직화한 거리 시위가 확산되다가 주춤했다. 그 바람에 루카셴코는 어느 때보다 더 단호하게 소셜 미디어를 통제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이란의 녹색운동 봉기 동안 행동주의자들은 미르호세인 무사비에 대한 개표 오류에 항의해서 조직화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도구를 동원했지만, 결국 폭력 진압에 굴복하고 말았다. 2010년 태국에서 일어난 레드셔츠 반란 역시 이와 비슷하면서도 더 빨리 진압되었다.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시위대가 방콕 시내를 점령했지만, 태국 정부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수십 명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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