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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기술낙관론에 대한 반박을 어떻게 할까?1

by jmin3 2020. 9. 5.

F. 스콧 피츠 제럴드가 소설 [위대한 캐츠비]에서 말했던 '녹색 불빛, 해마다 우리 뒤로 멀어져 가는 황홀한 미래'에 대한 믿음이 미국의 특징이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미국이느이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이 오랬동안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더 강하나 세속적인 믿음이 되어오긴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믿음에는 오래되어 있는 뿌리가 있다. 오랜 암흑기에서 더 밝은 미래로 가는 여정에 잠시 있었던 황금기, 당시 일어난 변화의 산물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변화는 계몽주의에 따라 잉태되었고 사업혁명으로 실현이 되었다. 자연력을 더 많이 제어하게 되고 경제가 더 생산적으로 되면서 되면서 인간은 자신들의 조상이 상상했던 신과 닮은 삶을 꿈꾸기 시작을 했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있었다. 순간 이동은 할 수는 없지만, 먼 거리를 빠르고 저렴하게 이동을 하거나 물건을 이동은 시킬수는 있었다. 올림프스 산에서는 살수 없지만 온화한 기후와 24시간 조명 그리고 풍부한 음식을 즐기며 살수는 있었다. 이심전심으로 통할 수는 없지만,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원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할 수는 있었다. 무한한 지혜를 누릴 수는 없어도,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지식에 즉시 접근할 수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나 나라들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은 이러한 호사를 즐기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황홀한 미래가 우리에게 손짓을 하는가? 오늘날의 개츠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YES'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인류는 지금 정보 기술과 로봇공할, 인공지능 분야에서 기술 혁신이 최첨단에 서 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이룩한 업적을 보잘것업게 할 것이다. 인단은 아직 더 신처럼 살 수 있다? 신처럼 기계를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계는 단지 강하고 미첩할 뿐만 아니라 지능적이고 또 거기에다가 심지어 자기 창조도 가능하나 그러나 이것은 낙관적인 생각이다. 메리 셀리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창작한 이래로 지능형 기계에 관한 생각들이 우리를 두렵게 했다. 많은 이들이 치솟는 실업과 불균형한 불평등을 포함한 커다란 위험을 적절하게 지적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10년 그리고 20년에 걸쳐 이러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대답은 바로 '아니요'입니다. 작은 변화로 실제 경제, 사회적 변화의 속도는 최근 수십 년간 빨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이것은 무슨말인가 할테다. 이것은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의 증가율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원로 회의주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고든은 다음과 같은 데이터를 내놓았다. 1892~1972년 미국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의 평균 성장률은 2.3퍼센트였다. 그 후 1996~2004년에 잠시 이 성장률에 근접했다. 그렇지만 1972~1996년에는 1.4퍼센트였고, 2004~2012년에는 1.3퍼센트였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과거에 세계 경제의 생산성이 급속하게 향상한 시대가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고 이메일, 전자상거래가 초기에 영향을 미쳤을 때 반짝 짧은 상승 추세를 보였을 뿐이다. 고든이 '기술낙관론자'로 불렀던 사람들(에를 들어서, MIT의 에릭 브리놀흐슨과 앤드루 맥아피)은 인터넷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엔터네인먼트와 정보가 제공하는 엄청난 가치가 측정되지 않고 GDP 통계에서 빠져 있다고 주장을 한다. 그들은 저렴하거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스카이프, 위키피디아)가 다양하고, 규모가 큰 DIY 엔터테인먼트(페이스북)도 있으며, 신제품과 신규 서비스는 모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강조합니다. 기숙낙관론자들은 2007년 6월 이정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도 아이폰을 손에 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거력은 무한했다. 무한하던 가격에서 정해진 가격으로 내려가는 것은 가격지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또한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 잉여' 즉 가격과 소비자에 대한 가치의 차이가 크다고 기술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끝으로 그들은 GDP 측정에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를 과소평가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적은 정확하다. 그러나 새삼스러운일은 절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19세기 이래 계속 사실로 나와 있다.